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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May 5, 2011

LOREN SCOTT Interview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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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REN SCOTT 독점 인터뷰


 (* 이 인터뷰는 아마도 최초로 행해지는, LOREN SCOTT
(로렌 스캇) 과의 독점 인터뷰이다. 로렌 스캇은 임재범 (Yim Jaebum) 과 연주한 최초의 미국인 드러머이고 역사적인 명곡 "Rock in Korea" 와 "The Same old story" 의 탄생에 관여한 장본인이다. 그는 오랜 시간을 할애해 본 임재범 팬페이지와의 대화에서 그 프로젝트와 알려지지않았던 뒷얘기 및 임재범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이 독점인터뷰를 위해 22년만에 입을 열었다. 즐겁게 읽어주시기 바란다..)





  (Loren Scott 2011. 사진제공 : Loren Scott)




로렌 스캇님 안녕하신가. 임재범 팬페이지를 위해 이 인터뷰에 응해주신것을 진심으로 감사한다. 당신은 전에 한국에 온적이 있었으니까, 한국인들을 대신해 안부인사를 드린다. 혹 "안녕하세요” 라는 말은 기억나는가 ?


하하... 물론이다. 당신도 안녕하신가 ?



좋다, 특히 지금 당신과 대화를 나눌수있다는 점에서 더욱. 우선, 자신의 소개를 좀 해줄수있는가 ?


우선, 나는 로렌 스캇이다. 나는 전에 한국에 간적이 있었고 그때 운좋게도 드러머로 활동할수있었고 매우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그리고 내가 본중에 최고의 보컬리스트와 함께 연주하게되는 행운이 있었다. 하지만 그 얘기는 이따가 자세히 하자. 나는 10살때부터 드럼을 두드렸고 16살때부터는 기타도 배웠다. 16살때 나는 프로로서 무대에 서서 드러머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애리조나의 메사라는 도시에 있는 작은 클럽의 하우스밴드였다. 그뒤로 바로 얼마전까지도 다양한 밴드에서 드럼, 기타, 베이스주자로 연주를 해왔다. 지금은 나는 프로직업사진작가로서 여기 캘리포니아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주로 아름다운 웨딩찰영을 맡는다. 사실 나는 사진작작로서의 활동이 너무 바빠져서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밴드활동을 그만할수밖에 없었다. 주말에 연주하는것조차 시간을 내어 열심히 밴드멤버로서 활동할수가 없을정도로 바빠져서 어쩔수없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짬이 나면 연주를 한다 나는 여전히 음악을 사랑하기때문이다.




일단 한국에는 어떻게 오게된것인가 ? 미군으로서 온것이였나 아니면 민간인으로서 우연히 와본것인가 ?


나는 미 공군으로서 1984년에 한국에 갔었다. 당시 오산공군기지에서 근무했었다. 거기서 1년간 복무하다가 귀국했다. 그뒤에 1년반이 지난뒤 다시 한국에 배치되어 2년간 (1987~1989) 더 복무했다. 그래서 총 3년간 한국에서 살았었다.




그뒤로는 와본적 없는가 ? 서울이 그립진 않은지 ?


아쉽게도 없었다. 1989년 한국을 떠난뒤로는 한국에 가보질 못했다. 하지만 꼭 가보고싶다 !




이제, "Rock in Korea" (락 인 코리아) 앨범에 남긴 당신의 흔적에 대해 얘기를 해야한다. 그렇지만 그전에 MAZURKA (마주르카) 에서부터 시작해야할것같다. 이 밴드에 대해 얘기해달라.


(* 로렌 스캇 (Loren Scott) 과 그의 동료들은 한국에 있는동안 미국인만으로 이뤄진 밴드로는 최초로 정식앨범을 발매한다. MAZURKA (마주르카) - "Dream Machine" (1988). 아세아레코드 발매)


나와 오산 공군기지에서 근무하던 4명의 동료들은 밴드 MAZURKA 를 결성하고 기지근처의 클럽에서 주로 커버곡들을 연주했다. 그런데 거의 모든 멤버가 작곡을 할수있어서 우리들이 쓴 곡들도 라이브에 넣기시작했다. 우리는 많은 클럽에서 연주했고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MAZURKA 앨범커버. 사진제공 : Loren Scott)


그럼 한국에서 어떻게 정식으로 앨범을 발매하게 된건지 말씀해달라, 특히 전멤버 미국인으로 구성된 밴드로서. 이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특이한 경우였고, 아마 그 이후로도 그런 경우를 본적이 없는것같다.


어느날밤, 우리는 송탄시에있는 예스터데이스 클럽에서 연주한뒤 집으로 돌아갔다. 그다음날 밤 클럽주인인 미스터 김이 내 집으로 찾아와 그의 친구인 음반제작자 방기남이라는 사람이 전날 우리 연주를 보았는데 마음에 들어했다고한다. 미스터 김은 우리에게 자작곡이 많은지 물어보았고 난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방기남이라는 사람이 우리를 만나서 앨범을 녹음하는것에 대해 얘기해고싶다며 서울에서 만나자고했다. 그래서 우리는 방기남을 만났다 -- 아마 송탄시에 있는 KFC 에서 만났을거다 -- 그는 우리 앨범을 제작하고싶다는 확고한 의사를 보여줬다. 사실 처음에 우리는 그의 진짜속셈 또는 조건이 뭘까 궁금했었다. 우리는 얼마나 돈이 들지 물어봤다 그의 대답은 "전혀" 였다. 그가 모든비용 - 서울로의 장비운송, 호텔숙박비, 식사비, 녹음, 믹싱, LP와 카세트의 제작비등 모든것을 자신이 부담하겠다고했다. 그러면 과연 우리는 얼마나 받을수있나 무척 궁금해졌다. 그의 대답은 또 "전혀" 였다. 대신 멤버당 LP와 카세트는 2매씩 주고, 앨범은 원하는만치 생산원가로 제공하겠다는것이였다. 




와우.. 조건이 참 "거시기"했다..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OK 하고야 말았다.. 하하.. 사실 신나는 일이였다. 우리가 애초에 돈을 벌려고 밴드를 만든건 아니였다. 앨범을 만들수있다는 기회가 생긴것이 무척 흥분되었다. 미스터 방의 목적은 나중에 자신이 미국에서 미국음악인들과 음반제작을 하고싶은것이였다. 그래서 일단 미국인으로 이뤄진 밴드로 시작을 해서 그의 능력을 시험하고싶었던것이다. 그러니 우리와 그는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고 그 기회가 우리에게 온것이였다. 그이후 우리는 한달여간 엘범에 녹음할 곡들을 맹렬히 연습했고 더 만들었다. 미스터 방이 그의 친구와 작곡한 한곡과, 카세트버젼에만 수록된 STEPPENWOLF 의 "Born to be wild" 커버곡까지. 카세트버젼에는 한곡 더있었는데, "After I Have Gone to sleep" 인데, 내가 작곡하고 부른곡이다.



밴드의 이름이 MAZURKA (마주르카)이다, 이것은 폴란드의 민속음악 리듬 또는 춤곡을 말한다. 전멤버가 미국인인 밴드의 이 이름이 어떻게 쓰이게되었는지가 궁금하다.


우리 베이스주자 (Terry) 가 제안한것이다. 그가 처음 얘기를 꺼냈을때 사실은 잘못 알아들어서 "버저르카" -- berserk (미쳐날뛰다, 광란을 부리다) 또는 crazy 의 어감으로 알아들어 "그래~ 죽인다!"라고 대답했었다. 나중에야 그가 제대로 알려주고 그 뜻이 뭔지 알려주어 후에야 그 단어가 폴란드의 민속음악으로 3/4 또는 7/8 박자의 왈츠리듬이라는것을 알게되었다.




그랬군. 그러면 어떤 멤버와는 상관이없는가 ? 멤버중 혹 진한 폴란드혈통의 사람이 있었는가 ?



아니다. 밴드내에 폴란드계는 없었다, 최소한 내가 아는바로는 그렇다. 하지만 우리들은 당시 매우 괴상한 이름이기도해서 밴드이름으로서 흥미롭기도 했다고 본다. 되돌아보면 더 좋은 이름이 없다 머리를 쥐어짜볼걸 그랬다. 왜냐하면 그 이름때문에 우리가 락밴드가 아닌줄 알고 오해한 사람들도 잇었으니까 ! 하하 ! 


  (MAZURKA 앨범커버의 로렌 스캇 (1988). 사진제공 : Loren Scott)


MAZURKA 를 결성하는데 모델이 된 밴드는 어떤것들이였나 ? 달리말해 영향받은 밴드들은?


우리는 SCORPIONS (스콜피언스), JUDAS PRIEST (주다스 프리스트) 그리고 VAN HALEN (밴 헤일런) 을 매우 좋아했다.




밴드가 연주를 하면, 자작곡외에 어떤 커버곡들을 연주했나 ?


많은곡들을 JUDAS PRIEST, VAN HALEN, SCORPIONS, BILLY IDOL (빌리 아이돌), 그리고 ZZ TOP (지지 탑)에서 빌려왔다. 굉장히 다양한 락 음악을 연주했었다.




나도 MAZURKA 의 앨범을 감상용과 소장용 미개봉반으로 각   1장씩 가지고있다. 나를 졸라 재수좋은 놈이라 불러달라  (웃음)..


그래, 당신은 졸라 재수좋은 놈이다 ! 어떻게 구했는가 ?




우선 "Rock in Korea"는 아주 오래전부터 가지고있었고.. 그러나 임재범의 역사를 제대로 파헤치면서부터 당신의 이름이 중요하게 눈에띄기 시작했다. 더 깊이 판 결과 MAZURKA 라는 밴드에 대해 알게되고, 그때부터 찾아다녔다. 그리고 수년이 지난후 드디여 2장의 상태좋은 음반을 손에 넣을수있었다. 한장은 원없이 들을수있고 한장은 개봉않고 고이 소장하고있다. 희귀한 앨범이라, 음반가격도 무섭게 지불해야만했다. (웃음)


하하... 그런가 ? (웃음) 




그렇다, 이것이 내게 있어서 아주 기분좋다. 그러면 MAZURKA (마주르카) 는 한국에서 활동하는동안 어떤 매체와 홍보나 인터뷰를 한적이 없었는기 ? 찾아봤지만 전혀 찾을수없었다.


우리는 AKFN 라디오 (미군방송)에 출연해 인터뷰한적은 있었고, 앨범홍보를 위해 포스터는 제작했었다. 하지만 그외 TV 나 신문 잡지등 활동은 하지못했다.




일단 내게 MAZURKA (마주르카) 의 앨범이 있어서 수록된 신나는 락 넘버들을 들어보았다. 80년대 느낌이 물씬나는 멜로딕한 하드락이라 느꼈다. 아마 당시에 즐겨듣던 AFKN 라디오에서 들었어도 전혀 이상할게없고 자연스럽게 들렸을 곡들이였다고 생각한다. 이 앨범에 대한 감회는 어떤가 ?


거기 있는곡들은 당연히 80년대의 락음악 느낌이 강하게 들어가있다. 내가 자랑스러워하는것은 모든곡들이 서로 분위기가 다 다르다는것이다. 난 우리가 곡마다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하여 선보였었다는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당신의 자작곡이 앨범의 첫곡으로 포문을 연다. 그리고 뒤에가면 드럼솔로라고할만한 파트도 들어간곡이 있다. 혹 당신이 밴드의 리더였다고 보아도 무방한것인가 ?


내가 밴드의 리더는 아니였다. 사실 MAZURKA (마주르카)에는 리더가 없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동등하게 밴드에 재능과 열정을 쏟았고 그런 방식이 좋았다. 내가 재적했었던 밴드들중 확고한 리더가 있는 밴드는 두개뿐이였다. 난 모든멤버가 공평하게 대해지는 그런밴드를 선호한다.



흠, 그런가 ?...


나는 그런것이 진정한 밴드를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MAZURKA (마주르카), 로 활동할때, 난 기타도 조금치고 건반도 아주조금 만졌기때문에 몇곡을 쓸수있었다. Todd Stafford (타드 스태포드 : 리드기타) 가 앨범 타이틀곡이된  “Dream Machine” (드림 머쉰), 을 작곡했었는데 가사가 솔직히 그저그랬다. 그러다 어느날 내가 끄적거려둔 가사들이 있는 (곡은 아직없는) 노트를 뒤적거리던 Todd 가 "Dream Machine" 이라 쓴 가사를 발견하고 자신의 음악에 딱 들어맞겠다며 쓰자고해서 그곡이 태어났다.  멤버들중 John Cormier (존 코르미어 : 키보드/기타) 가 정규음악교육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였다. 그래서 그가 모든 음악파트를 악보화했고 정리해주었다. Terry Scherrer (테리 쉐러 : 베이스) 또한 음악이론을 알았기때문에 모든곡에 아주 훌륭한 베이스라인을 넣었다. 그는 또한 "East Is East" 라는곡의 대부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Mike Stefanos (마이크 스테파노스 : 리드보컬) 는 우리의 막강한 프런트맨으로서 밴드의 목소리를 내주었다. MAZURKA (마주르카)의 멤버들은 모두 공평하고 동등한 멤버로서 서로를 생각하고 연주했다. 아주 즐거운 밴드였었다 !



(MAZURKA 멤버들 (좌에서 우): Todd Stafford (기타),  Terry Scherrer (베이스),  Mike Stefanos (보컬),  John Cormier (건반),  and Loren Scott (드럼). 사진제공 : Loren Scott)



한국에서 연주하는동안 기억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나는가 ? 아 그보다 낙원상가를 기억하는가 (웃음) ?


그렇다 난 그곳과 사랑에 빠졌었다 ! 거기서 아주많은 시간을 (특히 돈을 !) 썼다. 아직 있는가 ?



(* 낙원상가 : Nakwon Sangga – 서울한복판 종로에 서있는 모든종류의 악기와 음향장비를 판매하는 상가. 단 한건물에서 음악에 관한 모든것을 해결할수있다.)



그렇다. 아직도 우뚝 서있다.


와우, 꼭 다시 가보고싶다.




그것 또한 멋진일일것이다.  그러면 그밴드로서 당신이 한국에 머문동안 만든 앨범은 그것뿐인가 ? 아니면 미국으로 돌아간뒤 다시모여 연주하거나 새로운 밴드를 결성하진 않았는가 ?


ROCK IN KOREA (락 인 코리아) 앨범에서 Terry (베이스) 와 함께 연주한것 말고는 없다.




음, 그렇군.  혹 그때친구들과 아직 연락하는가 ? 잘들 지내시는가 ?


MAZURKA (마주르카) 멤버들과 몇년전에 마이스페이스를 통해 소식을 주고받았다. 다들 잘 지내고, 아직 음악을 즐기고있는것 같았다.




당신은 지금 연주하고있는 밴드가 없나 ?


아까도 얘기했듯, 가끔 연주는 하지만 정식밴드멤버로는 더이상 하지않는다, 시간이 없기때문이다. 그리고 내 아들들이 나보다 훨씬 연주를 잘한다. 그들을 지원해주고 활동할수있게 도와주는것에 만족한다.




녹음에는 어떤 드럼세트가 사용되었는가 ? 그리고 밴드사진에보면 빨간 방안인데, 거기가 밴드의 연습실이였나 ?


녹음에 사용된 드럼은 CB-700 이라는 커스텀 세트였고 로토-탐이 구비되어있었다. 사방에 Zildjian 심벌이 달려있었고, 아주 사운드가 좋았던 세트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빨간 방은 우리가 녹음했던 서울의 녹음스튜디오였다. 우리의 연습실이래야 오산공군기지 정문 근처에있던 내가 살던집 지하실이였다.





("락 인 코리아" 앨범커버. 2002 CD 재발매버젼. 오리지널 LP 커버는 아주 미세하게 다름)



이제 인터뷰의 핵심으로 들어가보자. 임재범 (Yim Jaebum)과는 과연 어떻게 만나게되었는가 ? 최대한 자세히 얘기해달라.


와우.. 어디보자....  MAZURKA (마주르카) 가 앨범을 녹음하고있었을때 한국의 유명한 락커들이 소문을 듣고 구경을 왔다 - 미국인 밴드가 한국의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고있다는건 드문일이였을테니까. 그들중 하나가 바로 백두산의 기타리스트 김도균 (Kim Dokyoon - "Steve" Kim) 이였다.  우리는 바로 친해졌고 그날 이후로 서로 자주 방문했다. 나중에 그가 ROCK IN KOREA (락 인 코리아)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었을때, 나에게 자신과 임재범(Yim Jaebum) 이 부르게될 두곡 ("Rock in Korea", "The same old story") 의 드럼을 맡고 영어가사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얼마뒤 그는 나에게 임재범을 소개했고 나는 그의 첫만남에서 능숙한 발음의 영어실력에 매우 놀랐다. 그리고 그는 매우 겸손하고 친절한 사람이였다. 나는 첫만남의 순간부터 그가 아주 마음에 들었었다.




와우, 아주 강렬한 첫인상을 남긴것 같다... 당시 그는 어느밴드 소속이였는지 기억하는가 ? 그리고 그의 노래를 들었을때의 느낌은 어땠는가 ?


내 기억으로 그는 아직 시나위 (SINAWE) 멤버였다. 그가 노래한 시나위 노래들을 들었을때 나는 그의 목소리에 엄청나게 놀랐다. 내가 그때까지 들어본중에 최고의 보컬이였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는 최고다.




그러면 그가 시나위 (SINAWE) 멤버로서 이태원에 있던 "락 월드" (Rock World) 에서 공연하는걸 본적있는가 ? 아니면 후에 그의 두번째 밴드였던 외인부대 (WAYIN BUDAE) 의 공연은 ?


유감스럽게도 없었다. 그의 공연을 제대로 본적이없다 아쉽게도.



그러면 “Rock in Korea” 프로젝트 이전에 임재범과 함께 무대에 올라 연주해본적은 없었나 (심야의 술취한 클럽 잼으로라도) ?


아쉽게도 없었다. 우리는 한번도 라이브로 같이 연주한적이 없었다. 녹음실에서도 우리는 따로 녹음했다. 먼저 음악파트를 다 녹음하고, 나는 가사를 완성하고 다듬어야했고 나중에 그가 "Rock In Korea" 와 "The Same Old Story" 두곡을 녹음할때 도와주러 다시 녹음실에 갔었다.  .



( 로렌 스캇 - 초희귀 메가레어아이템 MAZURKA 셔츠를 입고 피아노를 연주중. 뒤에서 임재범과 강기영이 감상하고있다. "Rock in Korea" 앨범에서)

 

앨범에는 가사가 "김도균 & 임재범"으로 되어있다. CD 재발매반도 오리지널 LP를 그대로 복사한것이니 마찬가지다. 하지만 당신은 본인이 그 락을 위해 결의에 찬 내용의 그 가사를 썼다고 주장하고있다. 이것을 확인해줄수있는가 ? 개인적으로는 당신의 말을 믿는다, 왜냐하면 그 가사들은 도저히 한국인의 입에서 나올수없는 가사라고 생각했기때문이다.


알고있다. 그것을 보았을때 기분이 그다지 좋지는않았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 김도균이나 임재범에게 물어본다면 그들이 확인해줄거라 생각한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믿는다. 사실 두곡중 그들이 만든 유일한 가사는, 김도균이 처음에 나에게 - 아주 빠른곡을 만들것인데 그 후렴구가 "Rock in THE Korea" (락 인 코리아) 로 되게 만들어달라 - 고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그곳에 "the" 가 들어가면 문법적으로 아주 어색하다고 설명했고 "Rock in Korea"로 하면 문제가 없다고 말해주었다. 그는 수긍하고 그렇게 하자고했다. 나는 나머지 가사를 바로 써내려갔다. 




그 두곡의 가사에 관해서 - "Rock in Korea" 와 "The same old story" 의 노랫말을 본인이 작사했다고 한다. 나는 당신의 말을 신뢰할수있지만, 다른사람들도 당신의 주장을 믿을수있도록 그 근거가될만한 자료나 기록이 혹시없는가 ? 가령 자필로 쓴 노트라던지..


내가 당시 타자로 친 가사지가 아직 있다. 무려 1989년부터 지녀온것이다! 하지만 임재범 (Yim Jaebum) 이나 김도균 (Kim Dokyoon) 이 확인해줘야 더 확실할것이다.



("Rock in Korea" 오리지널 가사원고. 자료제공 : Loren Scott)



그 사실이 정정되었으면 하는가 아니면 그냥 내버려두겠는가 ?


당연히 ! 만약 누군가 그 앨범을 다시 발매한다면 부디 내가 그곡들의 작사를 했었다는것을 명기해줬으면 좋겠다.  또 정확하지않은것이 있다. "All Because Of You"  를 내가 (손무현과) 공동작곡한것으로 표기했는데, 나는 작사만 했다. 그러니 그것도 사실 정확하진 않다. 나는 가사만 썼고 리드보컬만 맡았다.




그리고 "락 인 코리아"에는 따로 로렌 스캇이 퍼커션을 연주했다고 표기되어있다. 내가 이곡을 들은 수년동안 아무리 들어도 드럼세트외의 어떤 퍼커션의 소리를 딱히 찾아내지못했다. 이것에 대해 의문을 풀어줄수있는가 ? 정확히 어느 부분에 어떤 퍼커션이 들어갔다는것인가 ?


맞다. 그곡에서 코러스 ("락 인 코리아~") 부분동안 카우벨을 때리는것을 녹음했었다. 그러나 최종믹스에서 다 내려버렸다. 아마 엔지니어는 그것이 목탁소리에 더 가까워서 곡에 어울리지않는다고 생각했다는것으로 안다.




그리고 당신의 이름조차 잘못표기되어있다 (* 앨범 내내 Loren을 LoRRen 으로 씀). 이쯤되면 화날법도 한데, 누구 탓일까 ?


알고있다 ! 내 이름조차 제대로 표기안해준것 또한 유쾌한 일은 아니였다. 난 분명히 똑바로 알아보기쉽게 써줬는데, 결국 사방에 그렇게 표기되어서 앨범이 나온것이다. 하지만 이름은 잘못나갔어도 분명 나이다. "All Because Of You" 곡 리스트 바로 옆에보면 김도균이 웃으며 내게 손가락질하고있는것이 보일것이다. (* 글 하단에 사진 참조)

( 그룹사진. 로렌스캇은 좌에서 4번째 서있고, 그옆으로 김도균과 테리 쉐러가 보인다. 임재범은 가장 우측. "락 인 코리아" 앨범 속지에서)




"락 인 코리아" 앨범의 속지를 보면, 참여한 뮤지션들이 거의 다 들어간 큰 사진이 한장있다. 마이크주변에 서서 떼창을 녹음하는 장면같고, 당신은 물론 임재범과 김도균도 보인다. 이것이 어느곡을 녹음하는것인지 말해줄수있는가 ? 아니면 그저 사진을 위해 포즈를 취한것이였나 ? 


내 기억으로는 "락 인 코리아" 의 후반부에 "ROCK! ROCK! ROCK!" 을 녹음하기위해 많은이들이 모인날이였던것 같다, 하지만 사진을 찍었던 그 순간이 아마 실제녹음중인 상황은 아니였을것이다.  녹음과정을 기록하기위한 사진이랄까.




 
그리고 크레딧에 보면“Rock in Korea” 에는 두명의 베이스주자, 즉 테리 쉐러 (Terry Scherrer ) 와 강기영이 녹음한것으로 되어있다.  어찌도니건지 설명해줄수있나 ?


테리 말고도 "Rock In Korea" 에 왜 두명의 베이스연주가 들어가있느냐.. 좋은질문이다 ! 우리가 처음녹음을 마쳤을때,  기타솔로 밑에 들리는 배킹연주와 베이스라인은 현재음반에서 듣는 연주와 달랐다. -- 그것은 코러스 (후렴)에서 들을수있는 연주와 동일한 파트였다. 그런데 우리가 드럼과 베이스 녹음을 마치고 내려갔다가, 보컬파트 녹음을 도와주러 다시 올라왔을때 기타솔로 아래 반주가 달라져있었고 그루브감이 새로워져있었다. 드럼은 그래도 맞았지만, 기존의 베이스 연주는 새로녹음된 배킹과 어울리지않게 들렸다. 내 기억으로 김도균이 그래서 강기영을 불러서 일부 - 즉 기타솔로가 나오는 부분의 베이스라인만 새로 녹음했다고 말해줬다.




그렇군, 완전히 새로운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러면, 당신이 임재범과 함께한 두곡을 제외하고, 그가 부른곡들을 들어본중에 무엇이 가장 인상에 남았었나 ? 그걳이 메탈곡이던 팝곡이던..


그리많이 접해보진 못했다. 인터넷에서 그 두곡위주로 많이 찾아보았고 유튜브에서 연주동영상을 보았는데 모두 훌륭하게 소화하고있었다. 




당신이 MAZURKA (마주르카)에서 활동할때 임재범, 또는 김도균과 함께 협연한적은 없었나 ? 개인자격의 스페셜게스트로던 밴드멤버로던...


아쉽게도 없었다.



(김도균과 임재범 (좌로부터), 테리 쉐러와 로렌 스캇 (우로부터). "Rock in Korea" 앨범 속지에서)



어쨌든간에, 개인적으로는 "락 인 코리아"가 단순히 노래라고는 생각하지않는다, 그것은 한국락음악에 있어 일종의 선언문이였다고 생각한다. 이런 중요한 곡의 일부인데, 소감이 어떤가 ?


죽여주는 일이다. 이곡의 녹음이 끝났을때, 나는 바로 이것이 어떤 송가같은 곡이되고 관중이 미친듯 따라부르는 노래가 될것이라고 느꼈다. 마치 내가 어렸을때 들으며 자란 KISS 의 "Rock And Roll All Night" 같은곡 말이다. 실제로 내가 가사를 쓸때, 바로 그런 느낌으로 써내려갔다-- 이곡을 듣게될 한국의 락팬들에게 음악을 크게듣고 땅이 흔들리도록 뛰자는 메세지를 담아서 !


(* 최근 그의 버클리대학교 특별강연에서 임재범은 자신을 락에 눈뜨게 한 밴드가 다름아닌 KISS (키스) 의 일본공연 비디오를 보고서였다고 밝힌바 있다.)




그리고 “The Same old story” 는, 어떤이가 인터넷에서 평하길, 한국에서 나온 “Stairway to heaven” 이라고 쓴걸 본적이 있다. 이곡에 대한 소감과, 방금의 평을 들은 느낌이 어떤가 ?


난 그 곡을 사랑한다. 사실 "The Same Old Story" 의 가사는 내가 이때까지 쓴 가사중에 최고작품이라고 말하고싶다. 잘 들으면 아주깊은 의미가 흐르는 곡이라는것을 알수있을것이다. 간단히 얘기하자면, 삶이나 어떤 사람과의 관계에서, 다른일들과 다른 사람들때문에 원하는곳에 절대 도달하지못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런 부분이 있다 "... 또다른 사랑이 길을 막고 서있네" (...another love gets in the way) 가 그런 예이다. 내 경우를 예로 들어 풀면, 내가 드럼연주의 높은 경지에 오르지못한것은, 드럼만을 연습하지않고 중간에 기타를 배우는등 소홀히 했기때문이다. 또다른 해석은, 어떤사람과 애정어린 관계를 맺고있는데, 그것이 점점 더 견고하고 가까워지지못하고있다, 중간에 또 어떤 사람이 나타나 당신의 관심을 조금씩 빼앗아가기때문이다. 결국 관계가 깨지고 또다른 관계를 시작하는 순환을 표현한것이다. 난 이 노래를 너무나 사랑한다.



   ("All because of you"의 크레딧, LOREN Scott 이 노래했다. 여기보이듯 그의 이름은 온 앨범에 잘못표기되어있다. "Rock in Korea" 앨범에서)


"All because of you" : 당신이 직접부른 이곡은 어떻게 당당히 자리를 잡게되었나 ?


내가 "Rock In Korea" 와 "Same Old Story"의 배킹보컬을 녹음하기 위해 스튜디오에 다시 갔을때, 앨범에 참여한 또다른 뮤지션인 손무현을 만나게되었다. 그는 음악은 이미 녹음을 마쳤지만 가사가 아직 없었다. 그가 내가 노래하는것을 우연히 듣고는 마음에 든다며 영어가사와 직접 노래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나는 당연히 "예스 !"라고 대답했다.




그것은 매우 특별한 경우로 보였다“All because of you”에서 리드보컬을 맡았기때문이다. 드럼은 전혀연주않았고. 혹시 당신안에 리드보컬이 되고싶었던 욕구가 내내 있었던것인가 ? 


사실, 나는 그동안 재적했던 밴드에서 몇곡씩은 리드보컬을 담당했었다, 고등학교시절까지 거슬러올라가서 말이다. 난 노래하는것도 즐기며 리드보컬에 어느정도 자신감도 있다.




자신만의 락큰롤 트랙이 실린것에 대한 느낌이 어땠는가 ? 이곡을 이후 클럽에서 불러본적은 있는가 ?


멋진 일이였다 ! 하지만 스튜디오안에서 녹음을 위해 불러본이후 연주된적은 없었다. 좀 슬픈일이지않나 ?



  ("Steve" 김도균이 로렌 스캇에게 "다 너때문이야" (All because of you) 라고 말하는듯하다. "Rock in Korea" 앨범에서)


중간에 대화부분에서 "Steve" (스티브) 라 부르는것은 김도균을 말한것인가 ?


그렇다. 그는 스티브라 불렸다. 손무현이 중간에 나와 누군가 대화하는 파트를 넣으면 좋겠다고해서 넣었다. VAN HALEN (밴 헤일런)에서 David Lee Roth (데이빗 리 로스)가 한것같은 분위기라고 했고 나는 바로 어떤것을 원하는지 알수있었다.



“Hot for teacher” 에서 들은것 같은 ?


바로 그거다. 그래서 나와 스티브가 나눌수있는 분량의 대화를 그 부분에 들어맞게 썼다. 좀 장난스럽게 들리게 만들었다. 잘 나왔다 !


당신말에 동의한다, 그 곡은 매우 신나는곡이였다. 그리고 그 이후 93년에 나온 "소위" LIVE REMIX (또는 "Rock in Korea II") 버젼을 알고있는가 ?


음, 그것은 전혀 라이브버젼이 아니다. 스튜디오버젼에 관중소리를 덧입혀 낸것이다. 일단 라이브가 절대 아닌것이 내가 녹음실에서 연주한 드럼파트 그대로이고 라이브로 연주된적 자체가 전혀 없었기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Rock in Korea II - 또는 "Live Remix"- 표지. 진짜 라이브앨범은 아님.)


테리 쉐러 (Terry Scherrer : 베이스)는 이 프로젝트에 어떻게 관여하게 된건가 ? 당신과 같은 경로였나 아니면 좀 다른 방법으로 참여하게 되었나 ?


아니, 나와 같았다. 김도균 은 자신의 곡에 드러머는 물론 베이스주자도 필요로했고 그가 MAZURKA (마주르카)를 좋아했기때문에 우리둘에게 부탁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우리 둘에게 참여를 부탁했다. 나와 같이 Terry 역시 참여하게되어 매우 기뻐했었다.




당신과 쉐러 (Terry Scherrer) 씨, 그리고 임재범과 김도균은 그러면 4인조로 연습을 많이 했었나 ? 아니면 오직 녹음만을 위한 연주가 있었나 ?


아니다, 오직 녹음만을 위한 연주가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엽습이라고 할수있는것도 없었다. 내 기억으로는 김도균이 곡의 초기버젼의 데모를 카세트에 녹음해와서 들려주고, 곡의 중요부분과 변주, 분위기 전환되는곳등을 가르쳐주고 익숙해지게 해주었고 연주의 세세한 부분은 우리가 알아서 만들수있도록 했다. 그뒤 우리는 스튜디오에 가서 몇번 연습삼아 연주해보고 바로 녹음했다. 빨리 진행되었다.



이건 역사적 사실을 위해 중요한 얘기다. 이 두 곡을 그 4인조로 무대에서 라이브로 연주한적이 그러면 연주한적이 없었나 ? 왜냐하면 내가 아무리 뒤져도 이 앨범과 관련한 라이브공연에 대한 기록이나 기사를 찾을수없었기 때문이다.


전혀 없었다. 슬픈일 아닌가 ? 물론 했었다면 너무나 좋았을것이다. 하지만 기회는 오지않았다.




그러면 최소한 계획단계로라도 얘기가 없었나 ? 왜냐하면 분명히 어렸을때 본것이지만, 나는 분명히 어떤 스튜디오안에서 임재범이 "Rock in Korea"의 막강한 후렴구를 부르고, 옆에서 김도균이 바로 옆에서 기타를 치는 TV 화면을 똑똑히 본 기억이 있기때문이다. 연예정보 프로그램에서였던것같은것으로 기억한다. 이것이 ROCK IN KOREA 프로젝트였는지 ASIANA (아시아나) 의 공연을 위한것이였는지가 명확하지않다.


난 그런 화면은 본적이 없다. 분명한것은 음악을 녹음할때 보컬은 녹음되지않았다는것이다. 그래서 내 추측은 나중에 어떤 홍보화면을 위해 따로 찍은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 로렌 스캇의 사실확인으로 문제의 화면은 ASIANA (아시아나)의 연주로 추정된다. 1989년도 9월에 일본밴드 LOUDNESS 의 내한공연이 있었고 ASIANA가 오프닝을 맡았다. 이는 당시에 큰 화제였고, 따라서 TV에서도 취재했을수 있다)



자, 그러면 당신과 테리 쉐러는 자신들의 밴드를 벗어나서 임재범과 김도균과 한 무리로 음악적 탐험을 한적이 있다, 이 둘은 한국 락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이고 지금도 매우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돌이켜보면, 소회가 어떤가 ?


나는 매우 행운이였다고 생각한다. 시간과 장소가 잘 맞아떨어진. 만약 내 밴드 MAZURKA (마주르카) 가, 주인장의 친구가 음반제작자인 방기남이였던 클럽에서 연주하지않았다면, 아마 MAZURKA 의 앨범은 만들지못했을것이다. 그리고 그 일이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 김도균을 절대로 만나지못했을것이다. 그리고 김도균을 만나지못했더라면 아마 임재범은 결코 만나지못했을것이다. 당연히 "Rock in Korea" 와 "The same old story" 의 가사도 쓰지못했을것이다. 나는 아주 행운아였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을 기록해둔 사진이 혹시 있나 ? 만약있다면 이번 기회에 공개해줄순 있나 ? 알다시피, 당시 프로젝트는 한국 락계의 거물들이 다 모인 자리였었다.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하나도 없다. 분명 스튜디오 안팎으로 사진을 많이 찍은것은 기억한다, 그리고 그들중 일부가 아마 "Rock in Korea" 앨범에서 볼수있는것들이다. 그리고 당시 작업하던 곡들의 초기데모버젼을 담은 카세트가 몇개 있었는데, 지금은 다 없어졌다.




임재범과 둘이 찍은 "친구사진" 조차도 없나 ?


아쉽게도 없다.



아아... 그것 정말 안된 일이다. 슬프다...


그렇...다.


 

당신이 임재범이 최근에 부른 “Rock in Korea” 화면을 보았을때, 그 순간 느낌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당연히, 그의 목소리를 내가 처음 들었던 1989년때만치 죽여줬다. 내게 아주 많은 기억들을 떠오르게 해주었다. 그런데, 내가 아닌 다른 드러머가 연주하고있는것을 보고있자니 질투가 났다 ! 하하 !


(* 임재범은 "Rock in Korea" 를 한국 최고의 메탈밴드 DIABLO (디아블로) 의 반주로 오랜만에 가장 헤비한 사운드로 연주했다. 이 2011 버젼은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수있다)





당신은 그 비디오에 댓글을 달아놨다, 나도 거기서 당신을 찾아내게되었다. 당신이 쓴것처럼 그는 아직도 쌩쌩하며 그 누구도 범접할수없이 다 죽여버린다. 그가 최근 어떤 서바이벌식 음악프로에 출연해서 한국에서 자신의 경력 역사상 가장 유명해진 사실을 알고있는가 ?


그렇다, 소식을 들었다. 그가 다시 인기를 얻고있다니 너무나 기쁘다. 그는 받아 마땅하다.



그의 앨범들은 호떡집에 불난듯 팔리고있고 전국투어는 완전매진되었다, 최근에 아주 유명한 커피음료의 TV 광고까지 찍었다.


오오... 커피 ! 나는 커피를 매우 좋아한다 ! 하하 !




그의 최근화면을 많이 보았는가 ? 그 감상은 어떤가 ?


몇개는 보았다. 하지만 그는 보기에도 듣기에도 정말 멋지고 훌륭했다. 내가 본것으로만 얘기하자면.



그는 “Rock in Korea” 를 유명메탈밴드인 DIABLO (디아블로)의 반주에 맞춰서 노래했다. 21세기형 초강력 사운드로 업그레이드된 그 버젼을 듣고 어떤 느낌이 들었나 ?


정말 멋졌다 ! 다시 말하지만... 그 드럼파트를 두들기고있는것이 나였으면 좋앗을것이다. 하하 !




당신도 무시못할 경력의 드러머이니 묻겠다, DIABLO (디아블로) 의 드럼연주는 어땠나 ? 특히 원곡에서 당신의 박자감이 살아있는 중간부분의 강력한 느낌의 리듬섹션을 그가 재해석한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나 ?


아주 잘 연주해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다른 드러머들의 멋진연주를 감상하는것을 즐긴다. 드러머들은 좋은 사람들이다. 맨날 뭔가 그리 원없이 두들겨대는것이 삶인 사람들은 분명히 쿨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스트레스가 남아있지 않는법이거든 ! 하하 !




만약 기회가 온다면 직접 "Rock in Korea"를 다시한번 두들겨보고싶은가 ? 물론 임재범과 함께 무대에서.


물론이다. 시간과 장소만 말해달라, 거기 가있겠다.


그럼 숨 한번 들이 깊이 들이마시라. 최근 임재범의 해외공연 이야기가 나오고있다. 그리고 한국가수가 해외공연에 가면 십중팔구는 L.A. 로 가장 먼저 간다. 만약 당신이 임재범이 오늘 그가 도착한다는 얘기를 들었고, 마침 당신이 L.A. 국제공항 근처에 있다고 가정해보자. 지금 어떤 생각이 드나 ?


두말 할것도 없다. 가서 그를 만나겠다 !




만약 임재범이 당신에게 드럼스틱을 준비해두고, “Rock in Korea” 와 “The Same old story” 를 무대에 올라 함께 연주하자고 하면, 하겠는가 ?


당연히 ! 나는 임재범과 반드시 "Rock In Korea" 와  "The Same Old Story"를 무대에서 너무나 연주하고싶다. 정말 멋진 일이될것이다, 절대적으로. 난 준비되어있을것이다 !




어쩌면 당신의 옛 친구들을 불러모아 MAZURKA (마주르카) 를 다시 해보는것도 좋겠다 (그리고 연습실에서라도 재결합 연주라도). 그건 어떤가 ?


하하 ! 그것도 재미있겠다. 난 가끔 생각한다, 만약 MAZURKA (마주르카) 멤버들이 갑자기 악기를 들고 한자리에 모여 오직 기억만으로 예전 곡들을 연주해보자고 하면 어떻게될지. 와우 ! 나는 분명 아직도 드럼과 보컬을 완벽하게 해낼 자신이 있다. 하지만 기타난 건반파트는 그게 어려울수도 있을것 같다. 어쨌든 정말 재미있을것 같다. 


(로렌 스캇, 2011에도 여전히 롹킹. 사진제공 : Loren Scott)


당신은 이제 뮤지션의 삶을 뒤로하고 이제 다른 형태의 예술에 정열을 쏟고있다 : 사진작가로서. 그건 어떻게 시작되었고, 사진작가로서의 삶도 행복한지 궁금하다.


사실 나는 고등학생이던 15살때부터 사진에 관심을 갖고 공부해왔다. 내가 처음으로 결혼식사진을 찍은것이 19살때이다--그것도 필름으로, 디지털기기들이 등장하려면 아직 먼 시기였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것은 나의 중요한 취미였고, 2005년도에 공식적으로 프로사진작가로서 나서기로했다, 그리고 내 사업은 날로 번창해왔다. 나는 캘리포니아 전역과 하와이, 그리고 미국령 버진제도에서 웨딩전문촬영을 해왔다. 정말 즐거운 일이다.




가끔 잼 연주라도 하는가 ? 한다면 누구와 ?


물론이다 !  현재 밴드의 정멤버로 활동할 시간이 허락진 않지만, 아직 연습을 (내 16살난 아들의 드럼세트로 !) 하고있고 기회가 되면 드러머나 기타리스트로서 잼이나 세션연주를 하고있다. 음악을 사랑하는 관객앞에서 연주하는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당신의 예술적인 손은 이제 드럼스틱 대신 카메라를 들고있다. 이것을 읽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새로운 예술세계를 알리고싶으면 말씀하시라.


에에.. 벌써 많이 말한것 같다, 하하.  관심있는분들은 내 웹사이트 (http://www.lorenscottphotography.com/) 에 가시면 자세한 정보와 내 작품들을 보실수있을것이다. 




당신은 이제 드럼헤드가 아닌 카메라렌즈를 갈아끼우는것이 더 익숙해져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도 드럼을 두들기는것과 락으로 가득찬 땀흘리는 밤이 그립지는 않은가 ?


그렇다. 라이브무대는 정말 그립다. 하지만 드럼을 세팅하고 끝나고는 해체하는 노가다는 그다지 그립지않다. 내가 잘나갔으면 그런걸 해줄 로디들이 있었을텐데. 내가 모두 해야했다. 연주하는건 물론 정말 즐거웠다. 하지만 로디역할은 그다지 즐겁지않았다. 하하 ! 




아무튼 좋다. 언젠가 당신이 드럼세트에 다시 올라가 사람들을 날려버릴 락을 연주하길 기대한다.


고맙다. 나도 그리되길 바란다 !



그래서 든 생각인데, 만약에 당신이 유명한 락밴드에서 드럼연주를 할수있다면 어느밴드와 연주하고싶은가 ? 아아니면 자신의 밴드 MAZURKA (마주르카)를 재결성하겠는가 ?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밴드 - SCORPIONS (스콜피언스), VAN HALEN (밴 헤일런), 또는 RUSH (러쉬)를 위해 드럼을 쳐보고싶다.  이 밴드들이 내가 자랄때 음악적인 영감을 준 훌륭한 밴드들이였다.




당신이 꼭 알아야할것은, 임재범이 “Rock in Korea” 을 연주하는동안은 당신의 드러밍이 원조 연주이고, 한국 락음악 역사에도 그렇게 남아있을거라는것이다. 여기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


내 저작권료는 대채 다 어디로 갔는가 ? 하하 ! 농담이다. 나는 한국 락음악 역사의 한 부분이 된것이 매우 행복하다. 내가 한국에서 보낸 3 년도 정말 즐거운 기억이였고, 기회가 되면 꼭 다시 방문해 또다른 역사를 만들고싶다. 그때는 한국어를 읽고, 쓰고 말하는것도 꽤 했었다. 하지만 그이후로 쓸일이 없었으니 많이 잊어버렸다. 하지만, 내가 쓴 영어가사곡이 지금도 한국의 락팬들이 즐겨듣는 곡이라니 정말이지 난 행복하다 !




멋지다. 내 생각인데 그 곡은 한국의 락팬들에게 락 "클래식" 으로 세대를 뛰어넘어 길이 남을것이라고 본다. 마치 "Smoke on the water" (스모크 언 더 워터) 나 "Back in Black" ( 백 인 블랙) 같은 역사적인 명곡으로.


바로 그거다 !



돌아보면, 임재범은 "인간적으로" 어떻게 기억하는가 ? 그는 한국 연예계에 보헤미안으로 인식되어있다. 자주 출연을 펑크내거나 시스템에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는것 등으로 그다지 좋게 평가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당신이 본, 친구로서의 임재범은 어땠는가 ?


아까도 말했듯, 그는 늘 친절했다. 얼굴에는 큰 미소를 지니고있었고 나와 영어발음 연습하는것을 늘 기다리고 즐거워했다. 그는 많이 웃었고 스튜디오 분위기를 즐겁게 만들었었다. 주변에 그가 있으면 좋았다.




언젠가 그를 만나 술한잔 하고싶을것 같다 ?


사실 난 알콜을 마시지 않는다. 죽 그래왔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맥주한잔 사주고 나는 다이어트 콜라나 커피를 마시면 된다 ! 하하 !




혹시 한국을 다시 방문할 계획은 없는가 ? 아주 짧은 일정으로라도 ?


현재로선 없지만, 반드시 다시 가보고싶다.




여기 상황을 알려주자면, 임재범과 김도균, 김종서, 손경호는 아직도 음악계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있다. 그리고 당신이 잘 알았던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사랑과 평화의 드러머였던 이병일은 몇년전 사망했다.


그 밴드나 드러머에 대해선 잘 몰랐다. 하지만 한참 활동할 시기에 타계했다니 슬픈 일이다.




사실 스튜디오 단체사진에서 당신 바로옆에 푸른 쟈켓을 입고있던 사람이 그사람이다. 그는 한국최고의 훵크-락 드러머였다.


정말인가? 그게 그 사람이였는지는 몰랐다. 큰 손실인것 같다. 슬프다...




아마도 당신이 “Rock in Korea” 앨범에서 (기록되거나 기록되지않은) 가장 다양한 역할을 한 뮤지션이였던것같다. 마지막으로 하고픈 말은 ?


더 많은 음악을 만들자 ! 밴드들 다시 모이자 ! 하하 ! 그리고, 내 16살 난 아들 Brandon (브랜든) 을 눈여겨보기 바란다. 그는 내가 전성기때 연주한것보다 훨씬 더 훌륭한 실력을 이미 가지고있다. 유튜브에서 "Brandon Scott Drums" 를 검색하거나   http://www.brandonscottdrums.com/ 로 가보길 바란다. 그리고 내 19살 난 아들 Josh (조쉬) 는 미친 기타리스트이며 영화감독이다. 벌써 많은 젊은 친구들이 음악계의 수준을 높이고 있다. 나는 바로 내 아들들은 물론, "Rock In Korea" 을 듣게될 한국의 젊은 락 키드들에게 영향을 줄수있어 영광으로 생각한다.




아, 한국에서 외국인밴드로는 드물게 앨범을 발매했던 MAZURKA (마주르카) 의 경우도 잊지말자. 그건 어떻게 기억하는가 ?


아까 말한것으로 설명되었을것이다. 그런데 하나 덧붙일 얘기가 있긴 하다, 우리는 앨범을 내고 한푼도 받지못했지만, 앨범을 낸 밴드가 되었기때문에 그 이후로 클럽공연에서는 두배로 돈을 받을수있었다. 그건 좋았다. 그리고 레코드샵에 들어았는데 우리의 포스터가 붙어있고 판이 꽂혀있는것도 볼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한번은 내가 휴가차 부산에 간적이 있었는데, 거기에도 우리 MAZURKA 의 앨범이 꽂혀있었다. 주인장이 나에게 모든 앨범에 싸인해달라고 부탁해서 해주고온 기억이 난다. 하하 ! 그거 기분 째지는 일이였다 !



나 또한 광적인 락음반 콜렉터이며, 바로 그 앨범을 고이 소장하고있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 그 밴드의 주인공과 이렇게 얘기를 나누고 그동안 거의 알려지지않았던 뒷이야기들을 들을수있어서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진심으로 감사한다.


Thank you !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


뭐 거의 다 얘기한것같다. 이 인터뷰로 거의 잊고있던, 내게 매우 소중한 옛 기억들이 다시 생각나게 해주었다. 그러니, 아주 좋은 질문들을 해준 당신에게도 고맙다고 말하고싶다.




별 말씀을. 로렌 스캇님 당신에게 오랜 시간과 친절한 답변을 들을수있어서 매우 감사드리고싶다. 특히 당신이 제공해준 귀한 자료들과 사용을 허락해준점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이 직접 연주한 "Rock in Korea" 비디오를 이번 기회에 찍어서 보내준것도 특히 감사드린다. 이 모든것은 임재범 팬페이지에 올라갈것이고 그의 팬들이 그에 대한 정보를 더 얻고 더 많은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찾길 바란다. 특히 한국 락음악사에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 곡에 당신이 남긴 업적을 꼭 알게되길 바란다. 내가 말했듯, 그건 단순한 노래 이상이다. 그것은 선언문이며 한국 락의 중대발표문이였다.  


내가 감사한다. 아니, 내 말은... "천만에요" !




스캇님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당신에게 손으로 메탈싸인과 환호를 보낸다. 건강과 행운을 빈다.


당신에게도.




한국에서 행운과 경의를 보내드린다. 계속 락을....


Rock on!  |m|




그리고 이 인터뷰를 위해, 로렌 스캇은 최초로 그가 "Rock in Korea" 를 연주하는 영상을 찍어보내왔다. 즐감하시길....




(비디오제공 : Loren Scott)




LOREN SCOTT 님에게 정말 많은 감사를 보낸다, 그는 정말 많은 시간을 할애해 이 인터뷰에 응해주었고 많은 개인적인  추억과 이야기를 함께 나눠주었다. 본 임재범 팬페이지로렌 스캇님에게 박수와 존경을 보내는 바이다.




(* 최근 임재범의 역사적인 첫 해외공연이 전석 매진된 L.A. 의 노키아극장에서 열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락 인 코리아" (Rock in Korea)는 로렌 스캇이 없이 연주되었다....)
 



* LOREN SCOTT 의 공식 웹사이트와 관련 링크들 :


- http://www.LorenScottPhotography.com/


- http://www.facebook.com/lorenscottphotography


- http://www.youtube.com/LorenScott69


- http://www.livemusichq.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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